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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명문대 아시안 '소수우대' 소송
작성자 : 관리자
2023-03-21

[논&설] 美명문대와 아시안의 '소수우대' 소송…불편한 진실은

 

매년 9월이면 미국 대학가는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유에스뉴스월드앤드리포트(US뉴스)가 대학 순위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US뉴스 랭킹에 따라 재학생이 더 높은 학교로 움직이고 대학총장의 몸값이 정해진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이 랭킹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2012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모교로 유명한 조지워싱턴대가 주요 평가 척도인 신입생 중 고교 내신 상위 10% 비율을 부풀린 사실이 들통나 평가대상에서 퇴출당했다. 올해엔 컬럼비아대가 교수·학생 비율을 조작한 혐의로 지난해 공동 2위에서 18위로 추락했다.
 

US뉴스 랭킹에는 학벌과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등 아시아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식을 어느 대학에 보냈느냐를 성공의 잣대로 여기는 심리다. 문제는 자식이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명문대가 잘 받아주지 않는 현실에 있다. 아시아계의 불만은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과 맞물려 소수입학우대제(Affirmative Action) 폐지론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적극적 행동'을 뜻하는 소수우대제는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으로 발효된 것으로, 교육, 고용 등 각 사회 분야에서 인종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소수우대제는 세월이 흐를수록 취지와 달리 아시아계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심화시켰다. '전교 1등이 아시안이란 이유로 HYPSM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아시아계의 단골 구호다. 'HYPSM'은 미국 5대 명문 사립대인 하버드·예일·프린스턴·스탠퍼드·MIT의 합성어다. 명문대들이 아시아계의 입학문을 확 넓히지 않는 것에는 말 못 할 이유가 있다. 성적우수자 선발이 물론 중요하지만 기부금과 동문 유대, 대외홍보 등 학교 발전 역량을 키우는 것이 성적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재벌과 유력 정치인 자녀, 대중스타 영입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반면 아시아계는 근래 달라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가 학교 간판만 따고 기부에는 인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美연방대법원 밖 소수인종 배려입학 지지 시위 (AP=연합뉴스) 학생과 활동가들이 2022년 10월 31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대법원 밖에서 '다양성은 필수',
'내 인종은 내 이야기다' 등의 팻말을 들고 소수인종 배려입학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이 제도의 합헌 여부에 대한 첫 심리를 개시했다.

 

대학 측은 아시아계를 떨어트리려 어떤 방법을 동원할까. 백인을 40%, 히스패닉 및 흑인을 30%가량 뽑기 위해선 그만큼 성적우수 집단인 아시아계에 불이익을 줘야 하는데,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게 주관적인 기준인 용기, 헌신, 긍정적 사고 등 '인성' 평가다. 수능과 내신이 만점이면 오히려 '공부만 해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동아리 영역도 미식축구와 마칭밴드, 치어리더처럼 체력 좋은 백인과 흑인 학생이 주로 하는 단체활동에 많은 점수를 준다.
 

아시아계의 경우 성적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교과외 활동이 당락을 사실상 좌우한다. 외부 경시대회 입상은 기본이고 과학논문에 심지어 언론 활동과 사업체 경영까지 스펙으로 적어넣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아시아계가 시민권, 영주권자가 아닌 외국 국적자라면 입학이 훨씬 더 어려워진다. 외국인 몫으로 할당된 신입생 쿼터가 10%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의 외국 학생이 학비 보조(FA)를 신청했다가는 빛의 속도로 낙방하는 '광탈'을 당하기 일쑤다. 우리 사회지도층이 시민권과 학비가 보장된 원정출산을 하고 논문 등 스펙 조작을 일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근 소수우대제에 대한 위헌 심리에 들어갔다. 대법원은 2003년과 2016년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지금은 대법관 9명 중 보수 성향이 6명이라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에도 폐지론을 대표하는 단체인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했다. SFA는 지난 2008년 텍사스 오스틴대 입시에서 낙방한 여학생 에비게일 피셔가 백인이라서 떨어졌다며 위헌 소송을 냈지만 패소한 바 있다.
 

보수 성향인 클래런스 토머스(74) 대법관은 "도대체 다양성이라는 말이 무엇인가"라며 이번에도 위헌론을 설파했다. '흑인이라서 예일대 로스쿨에 거저 들어갔다'는 시선에 불만인 토머스는 소수우대제가 오히려 소수에 대한 불평등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위헌 결정이 나온다면 아시아계의 명문대 합격률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학 측은 더 고도의 전형을 만들어 학교의 이익을 지키려 할 것이다. 이들 명문대에 있어 미래를 위한 투자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논설위원